Koo Jahyun: 無題 Untitled
김리아갤러리는 2025년 9월 3일부터 10월 2일까지 구자현 개인전 《無題》을 개최한다. 40여 년간 회화예술의 본질을 탐구해온 구자현의 작업은 치열한 공정과 엄격한 재료 선택을 바탕으로, 시간의 밀도를 화면에 응축한다. 그는 작업의 9할이 바탕에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캔버스를 만드는 일부터 먹을 고르고 내광성 실험을 거치는 과정까지, 모든 단계가 오랜 시간의 축적과 손끝의 감각을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은 ‘구증구포’의 정직한 정제처럼 느리지만, 그 속에서만 발현되는 구조와 힘이 있다. 그의 화면에는 깊이 쌓인 층과 섬세한 결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호흡이 있다. 빛을 머금은 색면은 고요하지만 결코 정지해 있지 않으며, 미세한 흔들림과 숨결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표면 위에 드러나는 질감과 색의 미묘한 차이는 그 아래 겹겹이 숨겨진 시간과 물성을 암시하며, 관람자는 그 무게와 울림을 직감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대표적인 평면 회화 작품과 더불어 스크린 프린트, 목판화 등 다양한 프린트메이킹 작업을 함께 소개한다. 서로 다른 매체와 기법 속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는 그의 조형 언어는 바탕과 행위, 물성과 시간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태어나며, 이를 통해 구자현의 폭넓은 예술적 지평과 완성된 미감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것은 화면을 특정한 의미로 고정하기보다, 지속 중인 과정으로 남겨두려는 의지다. 응축된 시간이 어느 순간 폭발처럼 피어나 화면이 완성되듯, 그의 작업은 과정과 결과가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이번 전시는 장인정신과 동시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화면들을 통해, 재료와 색, 시간과 행위가 교차하는 밀도 높은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