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verview

    공간은 구조로부터 시작된다. 기둥이 서 있고, 그 사이에 틈이 생기며, 비어 있는 자리로 빛이 스며든다. 김아라는 이러한 건축적 질서 속에서 작업을 출발시켜왔다. 전통 건축의 공포(栱包) 구조에서 발견한 긴장과 균형, 목재의 결이 만들어내는 구축 방식에 대한 관심은 화면 안에서 추상적 형식으로 변주되며, 평면과 입체, 이미지와 구조의 경계를 오가는 조형 언어로 이어져 왔다. 이번 개인전 《단 하루도 이해하려고만 들면 긴 시간이다》는 그가 축적해온 구조적 사유를 다시 들여다보며, 이해와 태도에 대한 질문을 함께 꺼내 보이는 자리다. 전시 제목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리틀 블랙 드레스』에서 발췌한 문장이지만, 그 내용을 직접적으로 참조하기보다 하나의 태도로서 가져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먹을 주요 재료로 삼는다. 린넨을 먹으로 염색하고 세척과 채색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화면은 점차 어둠의 밀도를 획득한다. 그러나 이 어둠은 무엇을 덮거나 감추기보다 오히려 형상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먹이 스며든 나무의 결은 더욱 선명해지고, 직조된 천의 틈을 통과한 빛은 캔버스 프레임의 구조를 미묘하게 부각시킨다. 어둠과 여백은 대립하지 않고 서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화면은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시간과 물성이 축적된 구조로 자리한다. 전시 공간의 층별 채광 차이와 창의 유무 또한 이러한 조형적 탐구와 맞물려, 빛의 양에 따라 서로 다른 깊이와 감각을 형성한다.

     

    지적인 판단보다 평온한 상태와 내면의 감각을 신뢰하는 태도는 김아라의 작업을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다. 형식을 단순화하는 과정 속에서 그는 오히려 감각의 밀도를 확장한다. 아름다움이 대상의 표면이 아니라 마음속의 자각에서 비롯된다는 아그네스 마틴의 말처럼, 이 전시 또한 화면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보다 그 앞에 얼마나 머무르는가에 더 가까이 놓여 있다. 정사각형과 그리드에 대한 사유, 완전해 보이는 구조 안에 존재하는 미세한 어긋남에 대한 인식은 이번 작업에도 스며 있다. 전시는 관람자에게 특정한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화면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제안한다. 이해를 서두르기보다 감각이 서서히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이 화면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믿는 태도. 《단 하루도 이해하려고만 들면 긴 시간이다》는 이해를 앞세우기보다, 감각이 자리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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